아버지께서는 오디오를 별로 안좋아하신지라 사업이 제법 잘 되던 시절에도 끝내 들여놓지 않으셨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어느날 아는 사람으로부터 떠맡다시피 사오셨다며 꽤나 묵직한 크기의 중고 파나소닉(내쇼날)
카세트를 사오신 것이 그나마 처음이었다.
50개 쯤 되는 세계 유명 팝송 테잎세트를 하나 들여놓은 뒤로 정말 질리게 들었던 것 같다.
맘에 드는 노래들은 가사집이 너덜거리고 테잎이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이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빌보드 차트를 소개하던라디오 방송 등도꿀맛이었다.
그것이 내가 음악을좋아하기 시작한 계기인 셈이다.
물론 대학에 가서는 음악다방도 한 몫을 했었다.
갖고 싶은 그오디오를 들인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3학년 때 당시 OB맥주에서 개최한 대학생 수필대회의 1등인 대상 상품이 '80만원(?) 상당의 오디오'였는데
덜컥 대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학내 대회에서는 나름대로 꽤나 멋진 단편소설을 하나 냈는데 낙방을 하고서는 내가 너무 수준이 앞서간걸꺼야 하면서 자위한 적이 있었긴 했지만 글쓰는 재주가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대학와서도 우연히 학보사 기자 추천으로투고를한 적밖에는 없었던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수필이 1등먹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멋진 인켈 오디오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감격이었다.
나중에는 '방송'지에도방송감상기 같은 걸 보내서 실린 뒤 적지 않은 원고료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글을 좀 쓰는건가?'싶기도 했다.
어쨌든 나의 음반 편력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간간히 용돈을 아껴 구입한 LP를 사서 턴테이블에 걸 때마다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그 시절 산 것 중에는 아까워서 못버린 것이창고 안에 십여 장 있다.
아마도 곰팡이가 피어 있을테지만.
80년대 후반 CD가 등장하면서 당시 CD플레이어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워낙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연히아버지께서 사주실리도 만무했다.
막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1990년, 그러니까 4학년 여름방학 때 4주 정도를미국에 다녀오게 되었다.
유학가 있는 친구도 만날 겸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하게 가방 하나 들고 나섰었다.
처음LA공항에 내려서 잔뜩 긴장했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돌아올 때 가전 양판점에서 99달러짜리 Technics CD플레이어를 구입해오게 되었다.
한국에서 최소한 4,50만원씩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7만원쯤 되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나의 음반 수집과 음악사랑은 시작되었으나 대학원 다닐 때까지도 그리 열심히 사지는 못했었다.
방학 때 컴퓨터 특강 강사로 두 번 뛰었을 때는 제법 많은 돈도 받았었지만 몇 장 못샀던 것 같다.
그러나 직장 다니면서 하나둘씩 좋아하는 음악이 생기면 CD를 사곤 했다.
오디오도국산 인티와 스피커을 저렴하게 중고로 구입을 해서 자취방에서 멋지게 진열해 놓고 퇴근 후 감상을 했다.
직장을 옮기고 급여도 좀 올라서 산 영국제 aura va100 인티앰프에 mission 751 북쉘프를 들였을 때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끔 그 소리가 그리울 만큼둘다 역사적인 명기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가까운 신사역 사거리에는 SK Plaza라는 꽤나 큰 음반가게가 있었다.
퇴근 후 거의 매일 들러서 음악을 듣고 한 장씩 사곤 했는데 그 때 카드는 그 집에서 거의 다 쓴 것 같다.
그렇게 20여 년을 모은 음반이 지금은 3000장 쯤 된다.
사실은헤아려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정확히 몇 장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겠지 하면서 생각하면 그래도 못버릴 것 같은 사연깊은 녀석들이 좀 있다.
무려 6년이나 걸려서 갖게된 CD도 있다.
국내에서는 구할 방법이 없어서 틈나는 대로 ebay에 들러 세계 각지의 몇몇 사람과 경쟁하다 낙찰을 받지 못해 포기했지만
우연히 자주가는 음반사이트에서 구한 것도 있다.
틈나는 대로 내가 정말 아끼는 음반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음반정리는 차츰 해 놓을 숙제이긴 하다.
최근에 무압축 파일로 600여장을 정리해 놓았다. 무려 280GB의 용량이다.
아직은 CD가 더 정감이 있지만 편리하게 즐길 수 있으니 스마트하게 넘어가야 될 것도 같다.
오디오에 있어서는 실용주의자인지라 많은 바꿈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린 터에 많은 기기를 아는 편인데 회사에 몇몇 분은 나를 '고수'로, 심지어는 '초고수'라 칭하시는 분도 계신다.ㅋㅋ
어쨌든 내가 한 조언대로 하신 뒤 만족하시는 걸 보면 조금 아는 편이긴 한 듯한데, 그래도 고수란 생각은 안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음악과 오디오에 정신을 쏟아 넣은 것은 그리 즐거운 이유는 아닐 수도 있다.
특히나 총각시절 연애도 변변히 못했거니와 그냥 집에 와서 음악듣고 또 영화보는 재미가 거의 전부였던 시간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고수든 아니든 열심히 듣고 탐구한 것은 사실이다.
오디오 이야기도 가끔 풀어놓아야겠다.
집에 설치한 프로젝터를 포함한 홈씨어터 이야기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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