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삶의 흔적

아름다운 신혼부부들 3

아침마루 2010. 11. 5. 17:29

세 번째 신혼부부이야기

 

7살짜리 아들을 둔 46세의 남편과 37세의 인도네시아 출신 부인, 그러니까 다문화가정 부부이다.

부인의 모습은 한국인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였고 오랜 한국 생활 덕분에 우리말도 익숙한 편이었다.

 

첫날 일이 터진 것은 이 분들로부터였다. 신부가 핸드백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버스가 청주공항을 향해 출발한 이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 바람에

비행 출발시간에 맞추어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을 했던 대전KBS의 피로연 장소인 9층 식당에서 잃어버렸다 하고

축의금을 포함하여 84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있었다고 하니 참 난감했다.

제주공항에서 버스로 바로 이동하여 저녁식사 장소인 식당에 내리는 순간부터

부부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부인에 대한 책망으로 시작된 부부싸움이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남편은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서 연속으로 담배를 피워댔다.

부인 또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밖에 서있었다.

저녁식사 왜 안하시냐는 질문에 ‘먹었다’고 얼버무렸지만 먹을 여유가 없었을

첫날이라 서로 서먹한데다 신랑 나이가 적지도 않은지라 거들기도 어려워서 걱정만 했다.

다음날 아침 우려와 달리 호텔 로비에 내려온 이 부부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우리 화해했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잘 하셨어요~”

전날부터 입고 온 커블 점퍼가 참 잘어울리듯 하루를 다정하게 보냈다.

 

그런데 이 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였다.

저녁식사 메뉴는 흑돼지 샤브샤브, 그런데 부인이 이슬람교 신자라서 돼지고기를 못먹는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식당에 미리 연락을 해보니 비빔밥이 된다고 해서 두 그릇을 따로 주문했다.

그러다 보니 두 부부만 다른 식탁에 떨어져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잠시 후에 보니 뭔가 티격태격하는가 싶더니 몇 숟갈 뜨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편이

자리를 떠버린 것이었다.

결국 부인 혼자서 식사를 마쳤고, 나가서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동안 쌓인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본인은 물론 7살짜리 아들마저 돼지고기를 못먹게 해서 아예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밖에서 삼겹살 같은 것을 먹고 들어가거나 음식점만 가서 벤 냄새까지도 못견뎌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 말로는 그렇다고 이슬람교를 열심히 믿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면서

한국에 시집왔으면 적응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이 조금씩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런데 급기야 욕설이 나오더니 남편이 주먹질을 막 시작하는 상황에서 급히 말리게 되었다.

어느 상황이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게다가 신혼여행이 아닌가...

자리를 뒤쪽으로 옮긴 상태에서 우리 여직원은 그 부인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다.

이전에도 폭력이 있었는지...혹시나 방을 따로 잡아야 되는 것이 아닌지...

처음 일이라고 했다. 여직원은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연락처와 방번호를 알려 주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각각 부부와 이야기를 좀 했다. 나는 남편과 대화를 해 보았다. 

이전까지는 주로 들어주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부탁말씀을 좀 드렸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몇 십년간 살다 만났으니 서로를 존중하고 양보해야 되지 않는지...’

‘특히 외국에서 시집와서 의지할 데도 없고 하니 남편분이 더 그래야 되지 않는지...’

‘오늘 주례사에서도 우리 사장님이 남편분의 배려가 바로 국위선양이자 애국이라고 하지 않았냐는 등...’

상황이 좀 쑥스러웠는지 이전에는 한번도 주먹질을 한 적이 없다고

그동안 오랫동안 정말 많이 참아 온 것이 폭발한 것이라는 변명이었다.

 

우리 일행인 여직원도 부인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렸다.

너무 말대답하듯(버스에서도 약이 좀 오르게 만드는 상황이 있었다) 대응하지 말고

남편이 음식 문제로 답답해 하는 것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포함해서

서로 차이가 나는 부분을 인정해야 된다는 내용 등이었다.

 

다행히 밤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침에 마주한 두 부부는 여전히 냉랭했다.

특히나 화가 많이 난 남편은 관광과 식사를 거부한 채 버스 안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같이 내리자면서 부인이 팔을 잡아 끌면 더 화를 내곤 했다.

함께 거들던 우리도 얼른 피하듯 그냥 내렸다.

 

오후가 되어서는 조금 부담을 주는 게 낫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시면 저희가 정말 섭섭합니다. 비싼 돈 들여 관광이나 밥값 다 지불하는 건데

이러실 거면 결혼식 못올리는 다른 분들한테 양보를 하셨어야지요. 두 분 문제로

전체 분위기도 안 좋고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지요.“

 

그래서였을까. 저녁식사에 도착하여 들어가는 길에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가시는 것이었다.

“두 분 화해하셨어요?”

멋쩍은 듯이 웃으신다.

오후에 버스 안에서 했던 얘기가 조금 신경이 쓰였던지라 밝아진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에 도착해서도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이 부부는 마침 한자리 건너 옆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두 분이 화해하셔서 편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시잖아요? 부부싸움은 물베기라는 것...저희가 말씀 많이 드렸지만 싸우지 말고 잘 사셔야 되요.”

“제가 정말로 사랑해서 그래유~. 사랑안하면 관심도 없을 거예유~”

뒤가 늘어지는 충청도 사투리가 유난히 정겹게 들렸다.

 

 

에필로그

 

 

일행 중에는 유난히 닮은 부부가 있었는데 그 역시 신부가 베트남 출신이었다.

호텔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삐걱거리는 다른 부부를 의식해서였는지 그런 얘기를 했다.

“뭔가 부딪히는 일이 있으면 저 사람은 그냥 아무 얘기도 안해요, 화도 안내고...

그리고 여자는 다 똑같아요, 어느 나라나...

잘 해주면 되요.“

당연히 침묵이 적당한 해법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여행내내 다정하게 보내고 있었다.

 

TV나 신문같은 매체를 통해서만 보았기에 다문화가정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베트남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시집온 자국의 여성들에 대해 잘 대해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을 했다는 뉴스나

가끔 발생하는 불행한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부부를 통해서 문화적 차이의 극복 노력이 참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 총각을 비롯해서 부족한 신부감의 조달의 방편으로 동남아 여성들이 결혼차 이주해 오면서 급증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은 이제 개인만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혹시라도 우월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중에 폭력이나 폭언을 포함한 학대 등이 있다면

이 또한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문화가정과 결혼하는 이들을 위한 국가별 매뉴얼‘, 이런 것이라도 있어야 되는게 아닐까.

 

10쌍의 결혼식을 마치고 8쌍과 함께 다녀온 신혼여행 이야기는 세 부부의 이야기만으로 마감하려고 한다.

나머지 이야기는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담아 놓은 채...

그 분들과 함께 한 시간은 4백여 장의 사진 속에 담아져 있다.

다행히 부부들의 사랑을 듬뿍 담은 예쁜 사진들이 많아서 참 흐뭇하다.

 

10여 년전 내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실현된 자리에 3일 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