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삶의 흔적

흘린 돈봉투를 다시 찾다.

아침마루 2010. 10. 18. 12:30

큰 고모님 댁에 오신 부모님도 뵐 겸 인천에 다녀왔다.

아버지와 2년 터울이신 고모님은 유난히 정이 많으신 분이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신터라 두 분간의 우애는 참으로 두텁기만 하다.

2박3일의 여정이고 모처럼 올라오셨으니 아들집에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으면 하고 청했으나, 고모님이 쉽게 놔주실리 없는지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내려가실 예정인 일요일 아침에 찾아 뵙는 것이 아쉽고 죄송했다.

아버지는 만나자마자 이틀간 너무 잘 먹었다고 자랑을 하신다.

고모님의 막내딸인 사촌 여동생이 요즘 한철인 대하를 비롯해서 자연산 광어 등 외삼촌이 좋아하시는 해산물을 푸짐하게 대접해 드린 모양이다.

하의도에 직접 양식장을 운영하면서 연안부두에서 어산물 도매상을 하는 동생네는 제법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전을 하면서 빚도 제법 있었는데 몇 년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제는 꽤나 큰 규모로 키워서 거래처도 많고 매출액도 크다고 한다.

원래 계획으로는 집 근처로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점심을 함께 한 후 고속버스로 내려가시게 할 생각이었다.

역시나 고모님이 보내주시지 않으신다.

점심 준비해 놓았으니 먹고 오후에 인천에서 바로 가라는 말씀이시다.

인터넷으로 4시 표를 예매했다. 좌석까지 지정되는 참 편리한 세상이다.

10분 거리라는 인천종합터미널은 막상 도착해 보니 차량으로 북새통이었다.

백화점, 예식장,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어울려 있는데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줄서 있는 주차장 진입차량이 쉽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어찌하다 보니 10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어머님이 여유있게 5시 차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으신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기고 표를 바꾸러 가다가 생각하니 5시 차표도 있다는 보장이 없다.

시간 여유는 없지만 4시 버스를 타시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섰다.

작은 고모 몫까지 바리바리 싸주신 고모님의 정성 덕분에 보따리 짐만 6개...그걸 옮기는 일만 해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짐 두 개를 들고 게이트까지 뛰는데 마침 마트용 카트가 있길래 얼른 큰 아들을 불렀다.

예약한 표를 발권해서 버스 앞에 도착해서 짐을 싣고 승차까지 하시니 딱 1분 전이다.

아내에게 전화해 보니 그 사이 30m도 못움직인 것 같았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집을 향해 출발하는데 그 사이 휴대폰에 아버지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2km 쯤 간 지점에서 차를 세우고 전화를 드리니 뭔가 주저하신다.

‘혹시 차에 봉투 없냐?’ ‘내가 다리 밑에 깔고 있었는데...’

터미널 도착 전에 아내가 드린 봉투였다.

운전석 옆 자리 앉으셨던 아버지는 갑자기 007 작전하듯 내리시는 바람에 그 봉투를 흘리신 것 같았다.

차 안을 찾아보니 없다.

‘그럼 내리면서 쓸려서 떨어뜨린 모양이다...’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돈보다도 실망감과 미안함 때문인 게다.

‘그러게 잘 넣으시지 그러셨어요.’

말씀드리고 나서 아차 싶었다.

‘미안하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직전인지라 순간 고민을 했다.

내린 곳은 차량진입하는 외길로 가다가 정차해서 사람들 왕래는 거의 없는 곳이라 잘하면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를 돌려 터미널 반대편 진입로에 아내와 큰 아들을 내려주면서 부모님이 움직이신 동선을 거꾸로 가면서 찾아보라고 하고,

나는 그 사이 아까 갔던 대로 길따라 반대쪽 진입로쪽으로 돌았다.

그대로 차가 많아 이번에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잠시 후에 큰아들로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 찾았어요!’

전화기 속에서 아내가 아버지께 드리는 전화목소리도 크게 들렸다.

내 판단이 옳았다. 차 내린 곳에 그대로 떨어졌던 봉투는 다른 차들이 지나간 바퀴자국이랑 바닥 잔돌맹이로 찍힌 자국이 꽉 차있다.

물론 돈도 그대로 있었다.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니 ‘혹시 우리 안심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하셨다.

현금인지라 그렇게 10여분 지난 후에 다시 찾았다는 것이 믿기 어려우신 듯하고 걱정안하시게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진짜로 찾았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전주에 도착하신 후 통화에서 또 그 말씀을 하셨다.

큰 돈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렸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참 좋았다.

부모님과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던 반면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