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아저씨.
지난 주말 오랫만에 심야영화로 다시 보게 되었다.
딱이 볼만한 것도 없고 머리 아픈 인셉션도 밀린 숙제마냥 다시 봐야될 영화였지만
심야고 하니 재미있는 게 낫겠다 싶어 '아저씨'를 선택했다.
이미 봐서 다 아는 뻔한 내용의 영화를 두번씩 본다고 하면 '잘 이해가 안된다'거나 '정말 영화를 좋아하나보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은 두번 째 보는 영화는 '뻔한 내용', 그 점 때문에 더 묘미가 있다.
스토리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주는 여유때문에제대로된 탐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진정한 감상은 이 때부터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보더라도 나는 집착하듯 화면을 절대적으로 응시한다.
작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많은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몰입을 시켜주곤 하는데 '아저씨' 또한 그랬다.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갖는 즐거움이다.
총평부터 하자면 정말 능력있는 신예 감독의 화려한 등장에 대한 반가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토리, 긴장감, 배역, 장면 연출, 짜임새(구성), 음악, 이 모든 것들이 거의 완벽했다.
이 영화 딱 한편으로도 이정범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처음에 느꼈던 '원빈을 위한 영화'라는 것은 어쩌면 선입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연들의 배역이나 걸맞는 연기가 하나같이 잘 짜여진 점은 영화를 제대로 살려내고 있었다.
특히 람로완 역을 맡은 태국의 국민배우라는 '타나용 웡트라쿨'은 백미이다.
짧고 차가운 영어대사 몇 마디가 전부인 그는 표정에서 그리고 마지막 액션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소미가 만화가게에서 이마에 밴드를 붙여 주었을 때, 그리고 위기에 처한 앰블런스에서의 '아저씨~'라는 대사에서
두 번에 걸쳐 그가 예사롭지 않은(꽤나 멋있는) 악역임을 단계적으로 암시한다.
그래서 그가 또다른 '아저씨'라는 평에 대해 나는 충분히 동의한다.
마지막액션에서도 총을 내려 놓고 원빈과의 진검승부를 펼치는 장면은 상투적이긴 하나
비겁한 승리보다는 멋진 패배(결과적이지만)를 선택하였다.
총을 내려 놓기 전에 소미의 것으로 알고 있는 눈을 맞추는 장면은 설령 지더라도 겨뤄보고 싶은고수로서의 결투신청으로 해석되었다.
'500명'이라는별명의 불법 장기적출을 일삼았던 전직 의사를 처단하고 소미를 살려낸 것도 결국 그가 선택한 최소한의, 하지만 영화에서 의미는 너무나 큰 인간적인 선택이었다.
결국 영화의 엔딩에서 관객들이 안도할 수 있도록 하는데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옆집 아저씨',자신의 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무기력함에 희망조차 없이 살아가는 그가
누군가로부터의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예정된 응징의 단초가 된다.
가방을 훔쳤다며 봉변을 당할 때 외면할 때만 해도 세상과의 단절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 미안함을 증폭시킨 것은 소미에 있어서 '옆집 아저씨'인 자신이 유일하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을 때였다.
세상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던 그가 목숨을 걸고결국 소미를 구출해내는 과정은 긴장감도 충분하고묘사도 치밀하면서 탄탄하다.
옆집에 그것도 전당포라는 특성 때문에 연루되어지는 부분은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긴 하지만
게다가 상대는 무지막지한 악의 무리가 아닌가.
현실적이지 않음에도 너무나인간적이기에 응징의 동기는 영화가 주는 매력이다.
그래서 폭력이 동반되었음에도시원시원한 액션신은 관객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키는데 일조를 한다.
임신한 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절망을 어두운 전당포에서 잊은 듯 움크린 채 '오늘만을 살아가던' 그가목숨걸고 지켜냈지만, 결국 그 스스로는 절대 카타르시스나 희망을 갖지는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아픈 과거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다만 덮어져 숨겨있을 뿐...
시간이 가면 다 기억을 못할 뿐 또렷함마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