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많은 편이라 출근하는 날 아침이면 면도를 꼭 해야 한다. 날마다 샤워하면서 해야 하기에 무척이나 성가신 일일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거르면 지저분해서 게으르게 보이는데다 회사 다니는 사람, 그것도 공기업 직원한테는 기르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나중에 나이 먹으면 구렛나루까지 덮어서 길러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처럼 얼굴이 크면 잘 어울릴 것 같지도 않다.
어쨌든 이렇게 매일 면도를 해야 하니 면도기 선택도 나름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원하게 깎아 주면서 피부에도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그동안 써본 것이 많은데 전기면도기는 필립스가 제일 나은 것 같다. 전자제품 잘 만드는 일본제들도 여러 개 써봤지만 그다지 만족을 못했다.
그런데 전기면도기보다는 날이 달린 일반 면도기가 더 시원한 느낌을 주는 편이다. 이것 역시 그동안 참 많은 것을 써봤다. 질레트와 쉬크가 양대 브랜드인데 대체로 내 기준으로는 질레트가 나아 보였다. 비싼 고급형으로 비교해 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무래도 내구성인데 사용 가능한 기간이 더 길다. 어느 정도 수명이 다하면 수염보다 피부가 깎이는 느낌이 들고 간혹 베기도 한다.
사실 이 글 쓰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작년에 월드컵 즈음에 박지성을 모델로 한 질레트 퓨전이란 면도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5중날에 역방향 날이 하나 더 있는 형태인데 좀 비싸서 망설이다 당시 판촉으로 조건이 괜찮아 구입했다. 8개 날을 구입하면 면도기를 같이 주는데 여기에도 날이 하나 더 있으니 9개를 받은 셈이다. 사자마자 다음날 쓰는데 '오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미끄러지듯 지나가면서 수염이 정말 시원하게 깎이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써본 중에 최고였는데 기분마저 상쾌했다. 귀찮아서 하기 싫던 면도가 즐거워졌다면 좀 과장일까? 코 밑에 점하나 있는 것 때문에 간혹 베기도 했는데 신기하리 만큼 매끈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더 신통한 일은 이 면도기의 성능만이 아니다. 벌써 7개월째 날을 교체하지 않고도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8개 날은 아직 그대로 있는 채 처음 면도기에 달려 있던 보너스 날로 여태 사용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하는 면도이니 내구성이 대단한 것이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닐지 모르나 이래가지고 한 번 구입한 사람들이 면도날을 다시 사는데 몇 년씩 걸릴 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약간 저렴한 면도기들도 이 제품의 성능이 알려지면 덩달아서 안팔리지 않을까.
제품을 너무 잘만든 것이다.
지난 주말 똑같은 면도기를 하나 더 구입했다. 대전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도 면도날이 2개 포함되어 있다.
이 면도기 때문에 예전 라이터 생각이 났다.
담배를 피던 대학생활 즈음인가 지금의 1회용(사실 1회용은 아니지만) 라이터가 처음 발매되었었다.
'불티나'라는 상표를 달았던 그 제품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었다. 그 라이터가 처음에는 가스를 주입해서 계속 쓸 수 있는 주입식 반영구제품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가스 주입구를 막아버린 지금의 1회용 라이터로 변신하게 된다. 한 번 산 사람들이 가스를 넣어서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매출이 정체해 버린 것이다. 그나마도 이후 중국산이 점령해 버렸는데 나중에 보니 일부 중국산 제품도 주입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근데 그 중국산은 가스를 채워서 계속 사용할 만큼 내구성은 떨어져서 기능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면도기는 잘 만든 것인지. 잘못 만든 것인지 헷갈린다.
'생각의 기록, 삶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파와 가축전염병이 주는 교훈들 (1) | 2011.01.19 |
---|---|
결혼식에 다녀와서 (0) | 2011.01.16 |
대전으로 온 뒤 2 (1) | 2011.01.10 |
대전으로 온 뒤... (0) | 2011.01.10 |
지독한 추위 (0) | 2011.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