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육교가 하나 있다.
내가 사는 4단지와 길건너 5단지를 연결해 주는 육교이다.
양 쪽으로 30m만 가면 횡단보도가 있는데 거의 그 한가운데 있는데다가
주택가라서 차량이 그리 많지 않아 4차선 도로를 사람들이 대부분 무단횡단을 한다.
그런데 그냥 어른들이 건너가면 신경이 안쓰이는데 엄마들이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건너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차가 오기 전에 건너야 하니 십중팔구 뒤쳐지는 아이 손을 당기면서 뛰어 건너가곤 한다.
얼마나 위험한지...
그런데 운전할 때도 그렇지만 내가 그 근처에 있으면 오지랍넓게 꼭 말린다.
어제도 서울 나가느라 육교 및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양손에 6살, 4살 쯤 되보이는 남매 손을 잡고
양쪽을 부지런히 쳐다보면서 건널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200미터 단거리 선수 준비자세랑 비슷하다.
마침 옆에 있던 내가 얘기를 했다.
'아주머니,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저도 아이들 키우는데요.
지금 이렇게 아이들 손잡고 건너가시면 아이들한테 그렇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나중에 얘들도 육교로 안올라가고 뛰어가게 됩니다."
'아.. 예~"
그러더니 아이들을 이끌고 육교로 올라간다.
잠시 후에 같은 자리에서 초등학교 1학년 쯤 되보이는 사내아이 손을 잡은 아주머니 한 사람이 또 건널 준비를 한다.
똑같이 얘기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그냥 피식 한 번 웃고는 훌쩍 건너가고 맞은 편에 세워둔 승용차에 올라타 버렸다.
그 뒤로 두 아이 손을 잡고 막 내려오고 있는 아까 그 아주머니 모습이 보였다.
내 생각일지 모르지만 멀리서 봐도 그 분의 발걸음은 경쾌하지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이 동네 산지가 벌써 9년 쯤 되었고 우리 아이들 어릴 때부터 아내한테도 그건 철칙으로 했었다.
둘째 초등학교 1학년 때 애 엄마가 무단횡단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에 이 녀석이 나한테 '오늘 엄마가 저 데리고 무단횡단했어요' 하고 일러바친 적도 있었다.
멋적어 했던 아내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화는 안냈지만 그날 말고는 내가 알기로는 가족 모두들 육교나 횡단보도를 이용한다.
내가 굳이 육교로 다니라고 강조했던 것은 단순히 위반을 하지 말자는 의미만은 아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빨리가는 것이 잠시 올라갔다 내려온들 아니면 돌아간들, 제대로 정도를 걷는 것만 할까 하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매사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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