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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록, 삶의 흔적

어떤 친구이야기

스마트한 세상, 인터넷의 힘은 위대하다.

그 중에서도 구글의 검색 능력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그러하다.

 

딱 1년 전이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친구가 궁금해졌다. 그 친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란 꽤나 흔한 이름 석자, 그리고 모 여자대학교와 전공...세상에나 그 두가지로 검색했는데 그 친구를 찾아 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운영하고 있는 직장까지 검색이 되었고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까지 몇 개 읽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메일 하나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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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아주 가끔 떠오르는 얼굴이 있곤 한데 그러다가  다시 그냥 잊고 살고...그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맘먹고 세어야 할 만큼 그렇게 잊고 살았네.

인터넷의 힘을 믿고 작년인가 한번 검색하다 못찾아 실망하고 말았는데 오늘 갑자기, 정말 불현듯 그리운 그 친구의 이름이 떠올라 찾아보니 반가운 그 이름을 찾아 내고 말았네. 너무나 쉽게 찾아 허탈하기도 할 만큼 구글의 위대함에 다시 놀라고 말았어.

너무나 화려한(?) 약력 덕에 내가 찾은 그 친구가 맞다고 금새 확인한 반가움말고도 어렴풋이 몇몇 글 속에 아파서 고생했다는 얘기마저 읽으니 막연히 걱정도 되고 그냥 무작정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네.

그 신통한 구글은 결국 사진마저 보게 해주었는데...내가 아는 그 OO가 맞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그 사진 찍은지가 몇 해 흘렀다고 감안해도 젊고 좋아 보인다. 그래서 더 반갑고...

막상 생각해보니 얼굴 본 지가 벌써 20여년이 흘렀고 그래서 글마저도 반말을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몰라서 조금은 주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존대말을 하려니 그것이 더 어색하네.

그래서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쓴다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무색하게 그 오래된 어린 시절마저 기억이 나기도 하고.

잘지냈는지? 바쁘고 보람있게 살고 있는 OO치료 선생님이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글까지 읽었으니 오랜만에 찾은 소식치고는 한꺼번에 많은 걸 알아버렸구만.

이런...누구냐고? OO이야. OOO

아직은 어리지만 씩씩하고 귀여운 두 개구장이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었고 OO에 있는공기업 다니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 되어 있네. 20여년전 학보를 주고 받던 그 잠깐 사이에 약간의 방황이 있었지만 졸업하고 서울와서 공부좀 더 하다가 그냥 그렇게 직장에 자리잡아 버렸어.

일단 오늘은 친구 찾은 걸로 만족하고 이만 줄일게.

짬날 때 답장 한 번 줬으면 좋겠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차 한잔 할 수 있으면 더 좋겠고.

그럼 잘 지내.

OO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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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얼추 봐도 약력이 스물 다섯줄 쯤 되보일 만큼 열심히 활동하고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친구로부터 답장이 왔다. (허락도 없이 블로그에 친구의 답장을 남기는 것이 좀 미안하기는 하다)

 

-------------------------------------------------------------------------반갑다 친구야

그래 기억 나지. 아무튼 아이러브 스쿨에 등록도 친구찾기도 하지 않다가 지인이 연구소의 방을 하나 주어서 홍보한다고 올린 이력과 사진이 결국은 친구의 눈에도 들어 왔군 . 아무튼 반갑다 많은 일이 지나가고 이제는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고3, 중3, 초등 6의 엄마이구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말이다.ㅎㅎ

어릴적 기억에 OO이도 있었구, 방황하는 시절에도 친구는 있었지. 공부하구 아이키우고 동창들은 만나는것은 잠시가 아닌 많은 시간을 뒤로 하고 아직도 시간에 쫓겨사는 삶이 행복하다면 이해 가는지 ....그래 너도 잘 지낸다니 반갑다. 그래 얼굴보자. 그런데 참 안되는것이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서울 OO역주변에 남편이 일을 해서 그 근처에 살고 있다. 난 대학이 방학을 해야 시간이 난다. 강의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야 하구. 일요일은 OO에 있는 나의 연구소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난다. 결국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하는 격이 되었구나. 그래도 마음은 많은 부분 부자란다 .......잘지내고 너의 메일이 스팸으로 와서 지나칠 뻔 했단다. 아무튼 답장을 보낸다. 또 연락하자꾸나. 건강해라. 가족도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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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참 바쁘게 살고 있구나' 하고 충분히 느낄 만 했다. 그 똑똑하고 당차던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할 만큼...

며칠 후 두번째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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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빨리 답장을 받았네. 지난 금요일 모처럼 정시 퇴근을 해서 마침 주변사는 동호인 모임을 갔더니 후배 하나가 그런 얘길 하더라. 자기는 '언제 밥 한번 먹자'하고 소식없는 사람들 별로 안좋아한다고...말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뜻이라며 그러던데...가만 생각하니 평소 시간적으로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살기 땜에 그런 건지 그 얘기 나누던 호프집에 유난히 그런 말하고 약속 못지킨 회사 지인들이 여럿보여서 뜨끔하기도 했는데 말야.

이력에 적힌 활동을 보니 정말 무지 바쁘겠구나 했는데 예상대로구나.ㅊ 바쁘게 산다는 게 뭔지는 나도 잘 알지. 그리고 그런 모습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친구라는 것도. 오히려 어렸을 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늘 똑똑하고 당차 보였던 친구였으니.

중략...

말하라면 이렇게 못할지도 모르는데..쓰다 보니 길어졌네.

그래.. 막연히 약속한다고 무리할 일도 아니고...나중에 정말 한가할 때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겠지.

30대 후반 쯤에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몇 해 지나면 좀 나아지겠나 했는데 지금도 친한 친구들한테 전화 한 통 하는 일도 잊고 사는 것이 허다하곤 하네. 5년전쯤 중동갔다가 올 봄 잠실 근처로 돌아 왔다는 정말 친한 후배도 차일피일 몇달 째 만남을 미루고 있으니.

늘 건강하고... 가끔 소식 전할테니 바쁘면 잘 받았다는 답장 부탁하고.

그럼 잘 지내고 늘 건강하기 바란다.

OO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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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답장이 왔다. 진짜로 바쁜 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짧지만 충고까지 담은 답장이었다.

 

-----------------------------------------------------------안녕 바쁜 와중에 연락줘서 감사

내 번호 남긴다 016-OOO-OOOO 이다. 강의시간이 아니면 전화 통화 가능하다. 안받으면 문자 주면 되구 행복한 일주일 되렴. 최고의 아빠보다는 아이가 필요할때 아이곁에 있는 아빠, 남편도 마찬가지란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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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을 여러번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새로 옮겨 간 학교에서 반 1등을 하던 친구였다. 미안하지만 그 1등을 내가 가자마자 빼앗아버렸다. 약이 오를만도 했을텐데 나한테 무척이나 잘해 주었다. 숫기없고 부끄럼 많던 조그만 사내녀석한테는 그 친구의 행동이 어색하기도 했었다. 어떤 녀석들은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얼레리 꼴레리' 하면서 놀리기도 했었다.

재수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어느 일일찻집에서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도 재수를 했고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학 입학 후에는 가끔 학보를 주고 받았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지방대로 발길을 돌렸던 내게 거의 유일하게 자극을 주었던 친구였다. 그 때도 어느 봄날 학보를 통해 나한테 충고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포기하지 말고삼수를 해서 서울대에 꼭 갔으면 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부질없어졌지만 사실 난 그때 학교에서 만난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면서 사실은 심하게 앓고 있었다.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면서도 그 사랑을 포기하면서 학교를 그만둘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휴학하면 영장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지만 그건 어찌 보면 핑계에 불과했다.

그당시 이 친구를 서울에서, 전주에서 몇 번 만났지만 결국 친구의 충고는 멀리 한채 다니던 대학을 계속다녔고 친구도 함께 잊혀져 가버렸다.

그렇다고 그 사랑을 이루지도 못했다.

 

......................................세월이 흘러 25년 전이나 지난 지금, 참 많은 것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그 시절 1학년 때 공교롭게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만날 기회도 있었는데...첫사랑 그녀와 이 친구는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 그녀는 내가 이 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 줄 잘못 알고 있었는데도 난 열심히 부인도 안했었다. 돌이켜 보면 난 참 바보였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지도 과감하지도 못했던 소심덩어리였다.

오늘 지나간 메일을 쭉 보다가 이 친구 생각이 다시 났다. 두번째 답장을 받은 뒤로 일년이 다시 훌쩍 지나가버렸지만 아직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한번쯤은 꼭 보고 싶긴 한데...두 달도 안남았던 한가해질 것이라는 방학을 기다리다 1년이 가버렸다. 그런데 지금 마음 같아서는 어쩌면 아예 연락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가끔 궁금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궁금할 뿐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친구를 떠올리다가 결국 떠나간 옛사랑이 보고 싶어졌으니... 참 우습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아프게 했던 사람이 더 보고 싶은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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