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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록, 삶의 흔적

선의의 거짓말은 정말 필요한 걸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 정리를 하고 싶은 맘에 다시 블로그에 돌와 왔으니, 잘된건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부터 헷갈린다.

어제 분당에서 대전까지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머릿 속을 짓누르던 '선의의 거짓말은 정말 필요한 걸까?'라는 자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생각을 만들어 주신 분의 전화에 대고 그냥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직접 말 못하고 수화기 너머로, 그것도 강의 시간 중에 잠시 쉬는 짬에 했으니 조금은 비겁한 듯한 맘도 남는 걸보면 맘이 개운치는 않지만, 그래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외쳤던 이발사 양반마냥 후련하긴 하다.

이야기인 즉슨, 절친한 회사 부장님의 오디오 입문 이야기이다.

어찌하다 보니 주변 분들이 오디오에 입문하든 업그레이드를 하든 질문이나 자문의뢰를 종종 받는 편이다.

무조건 예산부터 물어보고 시작한다.

믿고 물으셨으니 내가 그 돈들여 직접 구입한다 생각하고 답을 드리거나, 구입에 도움을 드리곤 한다.

어줍잖은 오디오 경험보다 그런 마음으로 알아보고 도움을 드려서인지 만족스러워 하시는 편이고

그 바람에 다른 분의 의뢰로 꼬리를 물기도 한다.

오디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겪어본 시행착오를 줄이고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 It's my pleasure'이다.

이 부장님이 입문 과정은 약간은 독특하다.

사실은 그 직전에 함께 친한 다른 분이 아예 전적으로 나한테 의뢰를 하셨고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구해 드린 오디오로 시작한 음악감상을 맘에 들어하시는 참이다.

그 바람에 이 분도 여기저기 오디오를 알아보셨는데 어느날 꼭 찍어 놓은 걸 사진으로 보내시면서 어떠냐고 물으셨다.

다름아닌 빈티지라 할 수 있는 AR 스피커였다. 난 계속 말렸다. 

어짜피 내 의견일 수밖에 없어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으로는 오디오 입문을 비싼 돈 들여 빈티지로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주변인한테 얻거나 우연히 생긴 것이라면 몰라도 입문은 어느 정도 검증된 제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뒷탈을 차단할 수 있어서이다.

50년이 된 스피커인데 소리가 너무 좋다고 푹 빠져 중고업자에게 이미 20만원의 예약금을 걸어 놓으신 상태에서 여러 번을 나한테 어떠냐고 질문하는 의도는 그저 동의를 받고 싶어 하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난 계속 반대하는 것이 친한 분에 대한 도리라 생각을 했다.

제대로 말릴 틈도 없이 어느새 거실에 떡하니 갖다 놓으셨는데, 딱 거기에 맞는(?) 독일산 빈티지 리시버에 마란츠 CD체인저까지 같이 들여 놓으셨다.

스피커야 그렇다쳐도 리시버랑 체인저 가격을 듣는데 납득이 안되는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 다른 지인도 방문을 하셨었고 '소리 좋다'고 하셨다길래 AR이 물건인가 보다 했다.

처음 오디오를 갖춰 놓은 주인장의 맘도 이해가 되는데, 그보다 본인의 선택에 대한 동의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마침 분당을 간 김에 궁금하기도 해서 잠시 들르게 되었다.

차에서 듣던 CD 몇 개를 들고 갔는데, 첫 곡을 듣는 순간 솔직히 깜짝 놀랐다.

덩치답지 않게 저음도 거의 없고, 볼륨을 키우는 순간 고음은 쏘는 것이 귀가 아팠다.

적지 않게 실망을 한 참에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소리는 생각보다 좋은데 제 취향은 아닙니다'라고 둘러댔다.

'소리가 좋은지'에 대해 확인내지는 동의를 받고 싶어 하는 주인장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란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머리 속이 복잡했다.

선의의 거짓말로 스스로를 타협하는 것이 속편한 일이라는 생각이 나이 먹어 들게 된 것이지만, 그것이 세상사는 이치인 듯 일반화되어 있어 그리하는 것이지, 애초부터 내가 그리 동의하지 않는 현상인지라 여진히 맘은 오히려 편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한쪽 트위터에서 잡음이 난다고 하시면서 전화로 들려 주셨다.

그 바람에 고민할 것 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마치 망치가 머리를 때리 듯 멍한 고민이 해결된 듯 했다.

결국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그나마 그 물건을 판매한 중고샵 사장 욕을 하는 걸로 둘러댔다.

지난번에도 양쪽 소리가 안맞는다고 한 얘기까지 덧붙여 '수업료'를 지불하더라도 반품을 시도하라고 권해 드렸다.

걱정꺼리를 안겨드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말 안들어 그런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참에 다시 고민이 된다.

'선의의 거짓말이 정말 필요한 걸까"

필요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아닌 듯 싶다.

그보다 우선 다시 통화를 하면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부터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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